위기

지금이 40여년 살면서 가장 큰 위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금, 그 다음 위기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프롤로그

유한한 시간

남은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나는 남은 시간을 소중히 쓰고 있는가?

삶과 죽음

자연의 섭리,
피할 수 없는 예정된 운명.
나 또한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아름답지 않다.
몸과 마음이 조금씩 망가지다가,
너덜너덜해져서 떠나게 될 것이다.
겸허히 받아들이자.
단,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운동을 하자.

만남과 헤어짐

모든 사람, 모든 공간, 모든 시간과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
이것 때문에 슬프다 해도 방법은 없다.

잘못된 임시변통

바쁜 시간으로 무뎌지는 슬픔.
상황을 피하는 것일 뿐이다.

정면 돌파

나는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면 돌파 중이다.
많은 걸 했고,
많은 걸 걸었다.


이유

이곳에 남을 기회가 있었다.
난 그 기회들을 잡지 않았다.
왜 그래야 했나.

나의 남은 시간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
이제 남은 40년을.

매일 아침 혼자 일어나,
운동하고, 혼자 아침 먹고,
출근하고, 일하고, 혼자 점심 먹고,
일하고, 혼자 저녁 먹고,
텅 빈 집으로 퇴근한다.

내일은 친구들에게 연락해 볼까 하다가도
이제는 그것도 좀 지친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가정이 있어 항상 바쁘다 하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이미 약속이 있거나,
한참 뒤에 이제 잘 거라고 답이 오거나,
며칠 뒤에 문자를 이제 봤다고 답이 오거나,
답이 오지 않는다.
내가 그들에게 딱 그 정도의 존재임을 확인할 뿐이다.

아무 일도 없는 저녁들.
아무 약속도 없는 주말들.
함께 하는 사람이 없는 삶이 이런 건지 몰랐다.
사실 이제 이런 생활이 익숙하기는 하다.
다만... 아직 내게 기회가 있을까?

10년 후 50대가 되어
40대 전체를 여기서 혼자 지낸 나를 되돌아 본다면,
다음 50대에도, 60대에도... 죽을 때까지 그래야 한다면,
나는 지난 나의 선택을 후회할 것 같다.
내 푸릇한 삶의 이야기에
등장인물이 나밖에 없다는 걸,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나 뿐이라는 걸,
그때 이러이러했지 않느냐며
함께 깔깔거릴 사람이 없다는 걸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나의 따뜻한 가정을 꿈꾸는 것도,
가족, 친구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도.
"그때 한국에 갔다면..."
"그때 더 용기를 냈다면..."
지금 도전하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다.

이곳과 헤어지는 것이 아깝고 아쉽고 슬프다.
이곳에서의 추억 5년,
그 슬픔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건 명심하자.
지금 가진 걸 잠시 내려놓지 않으면,
내 삶에서 진짜 중요한 걸 놓치게 된다.


후회

나는 우연히 용기를 냈다. 그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내 삶이 크게 헝클어져 있었다. 장기적으로 옳은 선택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나는 이렇게 큰 변화와 모험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뒤늦게 알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이곳을 좋아했다. 동네를 달리며 마주하는 풍경들, 싱그러운 햇빛, 여유로운 시간들. 특히 지난 5년 이곳에서 내가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종종 기쁜 날들을 보냈다는 그 사실만으로 이곳은 내게 사랑스러운 곳이 됐다. 이곳이 조만간 먼 기억 속 아련한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하니 참을 수 없었다.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내 과감한 선택을 후회했다. 많은 날 자책하며 울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20년 전 그때처럼 지금 눈을 감으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달리기를 한다고 바뀌는 건 없었다. 여전히 시간은 앞으로 흐르고 있고 이별의 순간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에필로그

여전히 나는 오락가락 한다. 한편으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는 이 시기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는 용기를 낸 내 자신에게 감사하기도 하다. 동시에 이토록 후회되는 선택을 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힘들 줄 알았다면 그런 과격한 선택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 이걸 뼈저리게 배웠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며,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 하며, 그렇게 슬픔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말 어리석고 부족하다.

2024-12-28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