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전자제품들

나에겐 작동이 멈춘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다. 4년 정도 사용하던 어느 날부터 소리가 중간중간 끊기더니 결국엔 충전을 거부하고 있다. 그렇게 된 지는 꽤 됐는데 집에 스피커가 많은 것 같아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

JBL speaker

여담: 집에 스피커가 꽤 많다. 노트북 두 대, 모니터 두 대, 헤드폰, 유선 이어폰 세 개, 무선 이어폰 한 개, 천장에 빌트인 되어 있는 스피커까지. 다 사용하는 건 아니지만 소리를 낼 수 있는 물건이 10개나 되는 셈이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 카메라도 6개나 된다.

그러다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배터리가 문제가 아닐까? 한 번 열어보기라도 할까?"

ko.ifixit.com/Guide/JBL+Flip+3+Battery+Replacement/87646

역시 찾아 보니 있다. 댓글도 30개나 있다. 역시 나같은 사람이 많았나 보다. 하지만 과정은 녹록치 않아 보였다. 배터리가 끈적이로 붙어 있어 떼어야 한단다. 부정적인 댓글도 많다.

The last issue that I observed is that the battery was swollen, which made it near impossible to pull out.

일단 드라이버는 있으니 열 수 있는 만큼 열어 보기로 했다.

opened

kklip data

열기는 했지만 배터리를 뺄 수는 없었다. 위의 사진에서 전선이 나와있는 부분이 배터리인데 플라스틱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배터리가 꽂혀 있다. 폴라포 아이스크림을 생각하면 쉽다. 전선을 살짝 당겨 보았으나 어림도 없다. 끈적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위에 글쓴이처럼 배터리가 부풀어서 꽉 끼었을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을 찾아 보니 반대편에서 힘으로 밀어서 빼는 영상도 있던데, 그러려면 반대편에 온갖 실리콘, 납땜을 뜯어야 한다. 그건 복구할 자신이 없다. 부푼 배터리를 힘으로 누를 용기도 없다.


와, JBL의 디자인에 감탄한다. 🙌

스피커는 13만원이었다. 블루투스 스피커 치고 그렇게 비싸지는 않은 가격이다. 그렇다고 4년만 쓰고 버릴 가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편 배터리는 2만 3천원이다. 2만 3천원이면 아마도 고칠 수 있었을, 그래야 했을 물건이다. 배터리는 아주 쉽게 자주 부푸는 물건이다. 넉넉한 공간에 설치되도록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어떻게 저런 한 쪽만 좁게 터진 폴라포 같은 공간에 배터리를 쑤셔 넣을 생각을 했을까, 끈적이까지 발라서? 이 정도면 의도된 함정이다. 🙊


추가로, 사용하던 LG 노이즈 캔슬링 블루투스 이어폰도 망가졌다. 이것도 나이를 생각하면 배터리가 문제이리라. 역시 열어 봤다.

kklip data

이건 더 비싼 물건이라 혹시 배터리 교체가 가능해 보인다면 납땜 도구나 절연 테이프, 본드 같은 걸 사서 도전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저 네 점이 보이는가? 그렇다. 용접이다. 😲 배터리를 교체하려면 일단 저 작은 철판을 잘라야 한다. 그 다음 그걸 어떻게 새 배터리에 연결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납땜을 하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나의 모험을 여기에서 멈추기로 했다. 저거 아니어도 이어폰은 네 개나 더 있다.


요즘 많은 전자제품들이 배터리 교체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다. 위에 용접한 걸 봐라.

핸드폰도 예전엔 배터리 교체가 수월했다. 지금은 전문 도구들이 있어야 핸드폰을 열 수 있다. 물론 열었다고 끝이 아니다, 시작이지. 하지만 핸드폰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기기별 OS 지원 기한이 있어 꼭 배터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보안을 이유로 어차피 기기를 바꾸어야 한다. 이게 정말 나은 편(?)이라고 불러야 하는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다. 😑

노트북도 예전엔 배터리 교체가 수월했다. 드라이버도 필요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드라이버만 있으면 된다. 맥북은 논외다. 🤮

손목시계도 예전엔 배터리 교체가 수월했다. 오천원 들고 동네 시계방에 방문하면 30분 정도 후에 쌩쌩해진 손목시계를 돌려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스마트워치 회사가 배터리 교체를 지원하지 않는다. 대신 신제품의 반값을 받고 리퍼 제품을 준다. 배터리 교체가 신제품 반값 정도 되는 샘이다. 서비스의 강자 삼성은 논외다. 펄럭! 😎

블루투스 이어폰, 헤드폰은 약간은 입장이 다르다. 사실 걔네들은 유선 제품이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애초에 블루투스라는 것이 가까운 거리에 소리를 보내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니까. 그치만 굳이 선을 자르고 통신 모듈과 작은 배터리를 넣고 더 비싸게 판매한다. 그리고 소비자는 2~3년이 지나 새 제품을 사던가 반값을 주고 헌 제품을 사던가 선택해야 한다. 이러나 저러나 물건을 더 파는 회사에겐 이득이다. 소비자와 지구에게는 손해고.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한 유튜브 영상이 있다.
youtu.be/iX8DqW97REc


오늘은 동네 전자제품 가게에 가서 고장난 물건들을 버리고 왔다. 사실 4년 된 마우스도 스위치가 불안정하여 함께 버리고 새 마우스를 사왔다. 😏

그리고 집에 돌아와 가민 워치를 주문했다. 우리집 배터리 총량 보존 법칙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

2024-03-09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