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나

이 글은 미괄식이다.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미팅을 했다. 항상 해 오던 온라인 미팅이 아니라 오프라인 미팅이다. 정확히는 회식이다. 실제로 만나는 건 1년 4개월 만이다.

사실 어제는 잠도 잘 못 잤다. 다음 날 소풍 가는 어린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지하철을 타는 건 반년 만이었다. 실제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는 건 1년 4개월 만이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꿈 같았다.

함께 점심을 먹던 동료들, "한국엔 코로나 감염자가 벌써 400명이야.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라고 1년 5개월 전 점심을 먹으며 얘기했던 것이 생각난다. 마치 그것이 아시아 만의 문제였던 것처럼 다들 큰 관심은 없었다, 그때는.

그런 동료들이 하나 둘 모였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다시 얼굴을 보는 날이 오다니...

그동안 못 나눈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자녀 이야기, 본인들 이야기, 회사 이야기. 낮 3시에 만나 9시 까지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그렇게 갔는지도 몰랐다.

"그래, 이렇게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농담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 사는 것 아닌가!" 문득 행복 회로가 돌기 시작했다.


헤어지기 거의 직전 동료 중 하나가 나에게 물었다.

"끈닷넷, 혼자 지내지 않아?"
"응. 혼자 지내지."
"어떻게 견뎌? 그러니깐 내 말은 지금은 모두에게 힘든 시기니깐..."

순간 즐거움을 담당했던 두뇌가 멈추고 현실을 담당하는 두뇌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지. 1년 넘게 혼자 지내는 것이 평범하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 그렇지. 그렇지..."

'그렇다'는 말, 내가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 말고는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다'는 말 말고 할 수 있는 말이 굳이 없는 건 아니었다. 건강을 위해, 특히 마음 건강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해 왔다. 술도 줄이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내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래. 모두에게 힘든 시기지. 힘든 시기지..."였다.

순간 깨달았다.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부자연스럽게 행복 호르몬을 얻는 건 약물을 통해 얻는 그것과 적어도 정신적인 측면에선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그것들은 둘 다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착각을 준다. 누군가 불현듯 실체를 파악하려 할 때 와르르 무너지는 건 똑같다. 지난 몇 개월 간 쌓아 올린 내 행복의 성도 그때 와르르 무너졌다.

그렇게 현실을 담당하는 두뇌가 돌기 시작한 채로 동료들과 헤어지고 집을 향했다. 현실을 담당하는 두뇌는 나에게 싸구려 위스키라도 사 가라고 주문했고 난 잭다니엘을 사왔다.


운동을 통한 행복 호르몬이 약물을 통해 얻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해서 운동을 멈출 수는 없다. 이미 나는 그것들이 너무 필요하다. 너무 과한 약물은 조금 무섭다.

하지만 진짜 질문은 "나는 그래서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 러닝화 끈을 조여 매고 운동을 해서 얻는 부자연스러운 행복 호르몬 말고는 없는 걸까?

2021-07-02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