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있다는 건 좋은 것이다. 매우 좋은 것이다. 백수로 힘든 시간을 보내 본 사람은 안다.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돈을 많이 벌던 적게 벌던 그것이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 어차피 남들과 비교하면 끝이 없다. 적당히, 목숨 유지에 필요한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백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와 무력감이 줄어든다. 그것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 만큼이나 스트레스와 무력감을 줄여 주는 것이 '계획'이 아닐까 하고 최근에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것을 어떻게 해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야지, 어떤 도전을 해 봐야지 같은 계획이 있고 없고에 따라 무력감의 크기가 차이나는 것 같다. (계획이 있으려면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이 글에선 그건 일단 있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이런 혼자만의 계획이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 같은, 무용지물일 것 같은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으며 무력감을 느낀다. 그런 상황에선 계획이 아니라 그냥 상상일 뿐이다. 아쉽지만 아무 쓸모가 없다. 백수일 때 이런 계획이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백수였을 때에도 하루 일과, 일 주일, 한 달, 일 년 어떤 것을 얼마나 어떻게 할 지 계획을 세운다. 그렇지만 그것이 효력이 있을지는 알기가 매우 어렵다. 그 효력을 중간 평가할 방법이 보통은 전혀 없다. 하루하루를 보낼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는 생각은
'내가 일을 안 해도 세상은 너무 잘 돌아가는구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구나.'
같은 것들이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그것이 슬프게도 사실이다. 군대도 갔다 온 다 큰 내가 아침에 부모님 출근을 배웅하고 하루 종일 방안에 있어도, 아무도 당장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 세상은 그럭저럭 잘 돌아간다.
이런 스트레스와 무력감에 노출된 사람들을 도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직접적인 방법이었으면 좋겠다.
내 경우 게임이 간접적으로는 조금 도움되었던 것 같다. 적어도 게임을 하는 동안엔 현실을 잊고 일시적으로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현실과는 달리 게임 안에선 나름 계획했던 대로 레벨과 실력이 올랐다. (잘 하지도 못하는 카운트스트라이커, 메이플스토리를 틈틈히 했었다.)
블로그를 꾸며 보기도 했었다. 자잘한 컴퓨터 팁을 보러 누군가 내 블로그에 방문하는 것을 통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키보드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글과 사진을 올렸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도 키보드를 닦을 때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분명히 SNS는 아니다. 나와는 달리 월급을 받는 친했던 친구들조차 만나지 않고 살았다. 가상에서까지 그들을 만날 이유가 없었다. (특히 SNS엔 그들의 행복했던 순간만이 담겨 있다.)
꼭 백수가 아니어도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 온다. '세상 모든 사람을 연결하는 것', '화성으로의 이주를 준비하는 것' 만큼이나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끝.
[에필로그] 원래는 "계획과 일이 있다는 게 이렇게나 소중한 것이다." 라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울컥해서 글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갔다. 물론 일기장이라 괜찮다.
2018-02-08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