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내가 하는 판단이란 무엇일까 끄적여 보려고 한다.

객관적 판단?

무언가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때에 나란 인간은 나름 객관적이고자 한다. 주관적인 감정은 가급적 배제하고 여러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결론을 내리거나 소통한다.

"A는 이런이런 성질이 있는 반면 B는 그렇지 못해. 그러니 내가 판단하기엔 A가 더 좋아. 만약 너가 B의 장점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판단하고자 하는 대상이 복잡하고 다양할수록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너무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 컴퓨터 피플은 종종 C++이 좋으냐 Java가 좋으냐, 아님 C#이 좋으냐 OCaml이 좋으냐로 티격태격한다. 정말 무엇이 좋을까? 이것에 대답을 하려면 우리는 각각의 프로그래밍 언어가 가지는 성질을 잘 이해해야 한다. 다행히 피상적인 것은 의외로 쉽게 파악될 수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 설명서에서 알려 주는 것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쉽게 파악되고 이해될 수 있다. 운이 좋을 때엔 한 쪽이 다른 쪽보다 좋은 어떤 성질을 가짐을 이야기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프로그래밍 언어가 가지는 성질은 이런 것만이 아니다.

이런 다양한 경우를 모두 고려하는 건 쉽지 않다. 왜? 나에겐 시간이 유한하니까. 모든 걸 다 해 볼 순 없다.

우리에겐 시간이 유한하니까...

물론 어떤 걸 해 본 다른 사람에게 경험의 파편을 공유 받을 순 있다. 그렇다 해도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엔 그 양이 턱없이 부족할 뿐더러 그렇게 얻은 경험의 파편은 대부분 와 닿지 않는다. 와 닿지 않음. 어느 날 잘생긴 약장수가 나타나 이 인체공학적 키보드 한 번 써 보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도 손가락 손목 건장한 젊은이들은 쉽게 끌리지 않는 그것이다. 낯선 경험의 파편, 그리고 와 닿지 않음.

경험 그리고 관성. 나의 판단 기준은 경험에서 온다. 그리고 이는 관성으로 이어진다. 어떤 것에 익숙하고 기분 좋아진 나는 다른 경험을 선택을 할 이유를 쉽사리 찾지 못한다. 경험과 판단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익숙하고 편안한 곳에 나를 안착시킨다. 이것이 항상 나쁜 건 아니지만 부정적일 때도 있긴 하다.

그럼에도 판단해야만 한다.

올바른 판단이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게 주어진 수많은 결정과 판단을 해야 뭐라도 해서 목숨을 부지하지 않겠는가. 나의 판단이 완벽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어떤 것이든 선택을 해야 한다. 여전히 다른 사람과 의견을 조율하고 와 닿지 않을지언정 경험 조각들을 공유해야 한다.

그렇다고 멍청하게 모든 걸 여과 없이 받아들이거나 믿으려는 것은 아니다. '유한한 인간답게' 가지고 있는 경험 조각들 가지고 열심히 판단하고 틀릴지도 모르는 결정이라도 해 보고. 단, 내 경험과 판단은 항상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염두에 둔 채로 말이다.

반성

반성한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이 나의 부족한 경험 파편들을 진리인 양 떠들어 왔던가.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이멕스를 쓰겠다."
"우분투, 알트탭도 못하는 쓰레기."
"C++ 나쁘다."
등등

많은 사람이 낚인 건 아니지만 몇몇 낚인 분들께 죄송한 마음과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그렇다고 해당 글들을 내릴 것까지는 아니고, 흠흠.


요즘 생각보다 간단한 사실들을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의아하다. 물론 "날 이렇게 멍청하게 만든 초중등 교육 시스템 쓰레기." 하고 판단하는 것도 틀렸을지도 모르지.

그나저나 이 글에서 자동으로 뽑힌 태그는 엉망이네. 어쩌면 좋을까?

2017-03-17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