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나에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마음껏 개소리를 올리는 곳, 마음껏 징징대는 곳, 마음껏 허세를 부리는 곳이었다. 나 혼자 있는 방에 틀어박혀 신나는 음악에 허세 가득하게 고개를 까딱거릴 때 느끼는 즐거움이랄까. 이것을 이해하고 동참해 줄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과만 이 즐거움을 공유할 목적이었다. 나에게 SNS는 세상에 나를 알리는 대단한 정보 공유의 장이 아니었단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불가능해졌다. 나 혼자 있던 방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 형제가 노크하고 들어와 나갈 생각이 없다. 가족이 싫은 건 아니지만 집에 나만의 공간은 있었으면 좋겠지 않은가. 아무튼 이들이 어떻게 여기를 알고 들어온 걸까?
누가 내 방에 들어올 것인지 내가 정할 수 없다.
내가 느끼는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는 위의 SNS와는 느낌이 살짝 다르다. 평소에 전화로 이야기하던 사람들과 문자로 이야기하는 것 뿐이다. 카카오톡앱이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를 추천하는 것이 크게 어색하지는 않은 이유다. 어차피 나는 그들과 전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제 카카오톡이 친구 추천 알고리즘을 제멋대로 수정했다가 다시 복구했다. 내용인즉슨 친구의 친구들에게 나를 추천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아주 불쾌했다. 누군가 당신의 전화번호를 친구의 친구에게 당신의 허락 없이 모두 알려주었다고 생각해 보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카카오톡과 전화는 이야기의 전달 방식만이 다를 뿐이다.
왜 카카오톡이 이렇게 전화처럼 특별히 취급되는지 생각해 보자. 내가 페이스북을 안 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불편한가? 내가 인스타그램을 안 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불편한가? 하지만 내가 전화를 안 쓴다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다. 그런데 내가 카카오톡을 안 해도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다. 페이스북에도 메신저가 있고 인스타그램에도 댓글 기능이 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이들은 카카오톡을 대신하지 않는다.
카카오톡의 이번 행보를 보면 본인들의 앱이 사용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혹은 사용자의 개인 정보란 무엇인지 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언제 이런 일을 또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누가 나한테 말을 걸 수 있는지도 내가 정할 수 없다.
2016-10-20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