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

주의: 이 글은 컴퓨터 세계의 세 종교(운영체제, 프로그래밍 언어, 에디터) 중 하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선호의 문제이며 이곳에 적힌 내 생각은 많은 오류를 포함한다.

지금까지 세 개의 글에서 위와 같은 주의 문구를 넣었는데 주의가 적히는 글은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선교 활동'은 너무 공허하기 때문이다. 아, 이 글은 징징글이다. 징징글을 전 세계(?)에 공개하는 것이 내가 매달 5천 원씩 내는 이유다.

"이들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선호의 문제이며..."

나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솔직히 이건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지는 선호의 문제이지만 문제가 정해졌을 때 어떤 툴을 이용하여 푸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는 선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아직 우리네 인간의 지능으로는 도저히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항상 갈등을 일으키며 결국 "종교"라는 치트키로 무마한다.


선교, 무의미함

길을 걷다 보면 누군가 말을 걸어 온다. 나는 그들에게 내 어려움을 토로하지도,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는데 본인들의 시간을 들여 나를 구원하려 한다.

그 사람들도 이유가 있으리라. 본인의 믿음 덕분에 큰 어려움을 극복했고 거기서 얻은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베풀고 싶을 수도 있다.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모두 함께 행복하고 싶어서. 그렇게 특정 종교를 찬양하고 특정 지도자를 응원하고 특정 가수에 열광한다. 기쁨을 함께 나누는 건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난 그런 사람들이 싫다. 단순히 내가 사전에 원하지 않은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난 그들의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지는 모른다. 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안 궁금하다.

'어느샌가 내가 그들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되어 있는 건 아닌가 덜컥 겁이 난다.'

종종 상대가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는데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서둘러 이것저것 내가 경험한 것, 내가 생각하던 것을 풀어 놓는다. 효과는 없다. (몇 번, 손에 꼽을 만큼 있었던 적도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되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반복될 뿐이다. 관성의 힘은 생각보다 매우 강하다.

반대로 나 또한 그렇다. 변하지 않는다. 나는 종종 mac 좋아하는 사람, vim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묻곤 한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까 싶어. 대답은 두 가지다.

  1. 그것들의 단점을 모른다. 다른 말로 다른 것들의 장점을 모른다. 그래서 그냥 쓴다. 난 설득되지 않는다.

  2. 그것들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다른 것들의 단점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쓴다. '부끄럽게도' 나는 설득되지 않는다. 난 그런 장점과 단점을 듣고도 공감하기 어렵다. 내가 그런 장단점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관성이 작동하고 있다.

결국 무의미한 대화가 오갔을 뿐 바뀌는 것은 없다. 우리 모두 관성에 따라 내일도 오늘과 같은 나날을 보낼 것이다.


답답함 피하기

사람은 하나같이 다 다르다. 아버지 다르고 어머니 다르다. 부부는 점점 닮는다고 했는데 아닌 것 같다. 형 다르고 나 다르다. 50% 확률로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이렇게 다른데 남은 어떻겠는가. 20년을 같은 집에서 산 사람도 이렇게 다른데 말이다.

결국 나는 답답하다. 사실 내 주변 사람들 모두 그렇겠지. 다름을 인정하고 답답함을 견디는 것이 쉽지 않다. 더 나아가 "공감"은 너무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이 답답함을 견디면 '사회적 인간'이란 칭호를 얻게 될까.

그래서,

답답함을 피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무관심이다.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인 줄 알았는데 그들도 나처럼 도움을 요청한 일이 없다. 조금 과하게 말해서 나의 관심이 그들에겐 그냥 오지랖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라믄 안돼~" 불필요한 관심은 안된다. 이렇게 보면 무관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포기하는 연습 (관성 벗어나기)

종종 어떤 일을 진심으로 대하다 보면 감정이 섞인다. 감정에 사로잡힌 나는 궤변을 하고 궤변은 궤변을 낳고 궤변은 또 궤변으로 이어진다. "말"처럼 생기기만 한 무언가가 오고갈 뿐 남는 것 없이 시간이 흐른다. 아니, 이런 징징글을 쓸 수 있게 됐으니 남은 게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이대로 살기는 불쾌하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포기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답답함이 엄청 커지면 포기가 빠를텐데 내 예상보다 한계점이 높은가 보다. 한계점 전에 일찍이 포기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가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일주일에 한 가지씩 이유 없이 믿고 따라 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무언가를 믿지 못하는 건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아니면 내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그냥 관성때문일지도 모르니까. 한 가지씩 경험해 보는 연습이다. 왠지 재밌을 것 같다.


결론

🤐 + 😓 = 😯
무관심 + 이유 없는 포기

2017-07-20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