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헨리 마시 저, 이현주 역)"
언젠가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다.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 시간. 이런 것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 궁금하다. 특히 이것을 업으로 삶고 있는 의료계 사람들의 생각은 더 궁금하다. 아무래도 그런 것들에 어떤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
성 예로니모의 책상 옆에는 해골이 하나 있는데 이는 중세 철학자들의 이미지에서 자주 발견되는 상징물이다. 메멘토 모리, 자신도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지금 무엇을 만들든지, 그 물건은 나보다 더 오래 남을 것이므로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물건만 만들어야 한다. 암에 걸린 지금, 공예가처럼 다음번에 더 잘 만들어야겠다는 변명도 할 수 없다.
코로나를 겪으며 나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았다. 더 소중한 것과 덜 소중한 것을 구분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소중한 것에 쓰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나도 언젠가 죽는다. 그러니 주어진 것에 더 감사해 하는 날들을 보내야 한다.
그렇지만 이게 항상 쉬운 건 아니다. 오늘은 꼬인 문제를 잡고 있느라 퇴근을 늦게 했다. 그럼에도 그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퇴근 길 내내 문제가 머릿속을 맴돌았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실력이 부족한 스스로를 자책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가 있고 거기에 부딪히며 실력이 늘게 되어 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났다면 오히려 기회에 감사하고 즐겨도 된다. 머리로는 안다. 😅
그럼에도 '왜 이런 일이 나에게?'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의사로서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매우 단순한 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죽음의 필연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란다.
이 책은 저명한 의사가 암에 걸린 이야기다. 병을 치료하는 의사라도 똑같다. 늙으면 병들고 결국 죽는다. 강력한 힘을 가진 권력자여도 마찬가지, 부자여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죽음을 피하는 방법이 현재는 없다. 이것이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
먼 미래에 '왜 이런 일이 나에게?'라는 생각을 나도 하게 될까? 아마 죽음이 가까워진 당사자가 되면 그렇게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오래 사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필사적으로 오래 살고 싶어 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곧 150살까지 살게 된다면 단지 몇십 년을 더 산다고 과연 인간의 고통이 줄어들까? 우리가 죽음을 몇 년 더 늦춘다고 해서 우리 삶이 더 의미 있게 될까?
글쎄다. 100년을 넘어 50년을 더 살면 아무래도 더 좋지 않을까? 삶의 의미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던 내 좌우명은 "후회하지 말자"이다. 과거를 없는 샘 치자는 말은 아니고, "어느 시점에 돌아 보아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다. 왜 갑자기 좌우명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후회가 없도록 살면 죽을 때에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오랜만에 책을 읽으니 참 좋다. 기회가 되면 조만간 독서 모임에도 한 번 나가 보려고 한다. 일단 다음 책을 골라야지.
2024-02-13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