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밝은 밤 (최은영)"

인스타 달리기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 된 소설이다. 너무 재밌게, 슬프게 읽었다.

감히 평을 하자면, 입체적인 인물 묘사가 훌륭했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사건 전개가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를 때까지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슬플 땐 슬펐고, 기쁠 땐 기뻤다.

한국 사회의 성 불평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담아냈다.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의 비뚤어진 언행들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그런 행동들이 이해되는 건 아니다. 그런 걸 볼 때면 항상 답답하고 안타깝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 아빠라도 바뀌었으면 좋겠지만 사람 성격이나 행동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바뀔 리는 없겠지. 같은 이유로 한국 사회도 그렇게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아 답답할 뿐이다.

작가 이름은 최은영이다. 좋은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잘 기억해 두어야겠다.

내가 표현을 잘 못해서 그런데 더 근사하고 재미나고 슬프고 사랑스러운 내용들이 많다. 밝은 밤, 강추! 👍👍


그 모습을 보며 그는 확신했다. 이 아이는 군인들에게 결국 끌려갈 수밖에 없을 거라고. 그곳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끌려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전쟁은 참혹하다. 군인에게는 당연하겠지만, 민간인에게도 비참하고 끔찍한 일들이 꼭 생긴다. 전쟁은 절대 일어나선 안된다.


할머니는 증조모가 고조모에게 느낀 감정이 죄책감일 거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나면서, 고조모에 대한 증조모의 감정이 오로지 깊은 그리움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어리광 부리고 싶고, 안기고 싶고, 투정 부리고 싶고, 실컷 사랑받고 싶고, 엄마, 엄마, 하고 부르고 싶은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둔 채로 살아왔을 뿐이라고.

...

그제야 증조모의 눈에 자기 딸이 들어왔다. 붉은 얼굴에 작고 작은 몸. 그 조그만 것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니 가슴이 콱 막히고 눈물이 돌았다. 막막했다.

증조모는 백정의 딸로 태어나 핍박을 받으며 살았다. 그런 증조모가 딸을 낳고, 똑같이 핍박을 받으며 살아갈 그 어린 것을 생각하니 막막했던 것이다. 나도 같이 울었다. 😢


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 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나의 몸을 만져보면서.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우주를 연구하는 주인공다웠다. 이런 생각 내게는 처음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빛나는 별이었을 것이고 (진짜 별), 하나의 돌덩어리였을 것이다. 회사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먼 옛날 한 덩어리(?)였을 다른 직원들을 보니 갑자기 없던 인류애가 샘솟는 느낌이랄까. 곧 내가 될 저녁 요리를 보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속으로. 👋


그렇지만 내 상상력은 거기까지였다. 그렇게 혼자 살면서 나이들어가고, 나의 원가족 모두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법적 보호자가 없는 삶, 허술한 가족이나마 사라진 삶이 어떤 것일지 상상할 수 없어서 막막했다.

...

엄마는 나 혼자 살기에 무섭지는 않은지, 새로운 직장은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봐줄 사람이 있겠느냐는 말을 했다.

주인공의 상황과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나도 해외에서 혼자 지내며 보호자가 없다는 것이 은근 스트레스다.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기댈 만한 사람이 없다. 이 모든 상황을 내가 자초한 것이라 누구를 탓하겠느냐만은. 😔

편지가 점점 뜸해지면서 할머니는 희자를 조금씩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언젠가 희자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거야.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 나도 그래서 친구가 없는 것이다! 😜

나는 너무 오래 개성과 대구를 그리워했는지도 몰라. 하지만 내 삶은 개성에도, 대구에도 있지 않아. 내 삶은 희령에 있어.

내 삶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아직도 이곳에 스며들지 못한 것 같은데.

그런데도 언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싶을 때가 있어. 배부른 소리라는 거 알아.

하핫, 나도 배부른 소리! 🤣

2023-08-07 씀.